분류 전체보기57 Y-9 기계가 깨어나는 소리가 연구실 전체를 울렸다.경고음이 낮게, 깊게, 심장을 때렸다.마치 그날의 메아리가 다시 재생되는 듯한 기분.하지만 이번엔그때와 달랐다.나는 기억하고 있었다.내가 왜 버튼을 눌렀는지,누굴 막으려 했는지,무엇을 지키고자 했는지.팀 리더였던 그는기계의 바로 옆에 서서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이번에는…”그의 목소리는 더는 울리지 않았다.사람처럼, 아주 낮고 조용하게 울렸다.“…너 혼자가 아니다.”나는 숨을 고르고 기계로 천천히 다가갔다.발걸음이 갈 때마다 바닥에 금속음이 울렸다.공기가 진동했고, 기계는 불규칙한 빛을 쏟아냈다.내 손을 떼어낼 수도 없었다.운명처럼 이끌리는 느낌이 들었다.이 기계는 나를 알고 있었고,나도 이 기계를 알고 있었다.그때, 존재가 갑자기 말했다.“기억해라.너.. 2025. 12. 11. Y-8 그 말은 내 귀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지금밖에 없어.”내 목소리.확실히… 나였다.그러나 기억 속의 나는 지금의 나와 전혀 달랐다.그 목소리에 깃든 결의, 단호함, 그리고… 비밀을 알고 있는 자의 침착함.그건 절대 ‘몰라서 버튼을 눌렀던’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공간이 완전히 뒤틀리며 주변이 흩어졌다.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나는 그 중심에서 또다시 끌려왔다.몸이 앞으로 끌리는 느낌이번엔 추락이 아니라, ‘끌어당김’이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나는 연구실의 메인 챔버 안에 서 있었다.기계가 있었다.검은 구체, 수많은 전선, 빛을 모아두던 투명한 막.모든 것이 그날 마지막 순간 그대로였다.그리고 그 앞에한 사람이 서 있었다.나는 숨을 들이켰다.저 사람은… 나였다.기억 속의 나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경보음.. 2025. 12. 11. Y-7 끝없는 낙하가 이어졌다.중력은 분명 아래로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지만,어딘가에서는 위로 떠오르는 것 같은 이상한 감각도 동시에 느껴졌다.어둠 속에서 방향과 속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그저떨어지고 있었다.기억이라는 심연 속으로.손을 잡고 있던 존재의 감촉이 희미하게 흔들렸다.나는 본능적으로 그 손을 더 세게 붙잡았다.미끄러지면, 그 즉시 이 끝없는 어둠 속에 영영 가라앉게 될 것만 같았다.‘기억을 완성하자.’그 존재의 마지막 말이 귀에 계속 맴돌았다.내가 잊고자 했던 것,숨기고 있던 것,두려워 피했던 모든 조각이지금 이 어둠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리고추락이 갑자기 멈췄다.충격은 전혀 없었다.눈을 뜬 듯도, 계속 감고 있는 듯도 애매한 상태에서나는 평평한 바닥에 서 있었다.주변에 서린 어둠이 아주.. 2025. 12. 11. Y-6 존재의 얼굴에서 스쳐 지나간 그 미세한 ‘웃음’은인간의 표정을 흉내 내기엔 너무 매끄럽고,감정을 담기엔 너무 기계적이었다.하지만나는 그 표정을 알아보았다.너무도 선명하게.“말도 안 돼…”입술이 바짝 말라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네가… 날 지시한 게… 너였다고?”존재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그저 움직임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러나 그 침묵 자체가 정답보다 더 선명했다.머릿속에 다시 목소리가 울렸다.차갑고 단정한, 나를 조종하던 그 목소리.“우리는 네가 필요하다.”그 목소리의 주인이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이 존재였다.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몸이 떨려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왜… 왜 나였지?”질문은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왜 나를 선택한 거야!”이제서야 존재가 .. 2025. 12. 10. Y-5 눈앞이 회전하듯 흔들렸다.밀려드는 기억의 파편들이 서로 부딪히며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내 기억이 아니다.아니, 내 기억일 리 없다.하지만 빛은 계속해서 내 두개골 깊숙이 스며들었고, 장면들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복도의 붉은 경고등 아래에서,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떨리는 목소리, 간절한 손짓, 문틈 사이로 넘실거리는 연기.그리고그 사람의 손을 내가 뿌리치는 장면.손목을 휙 털어 내며 뒤로 물러났던 내 모습이 보였다.“아니야… 나 그런 짓 하지 않았어… 난… 그럴 리가…”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떨렸고, 거의 울음에 가까웠다.그러나 기억 속 나는 명확했다.그리고 무엇보다 끔찍하게 의식적이었다.도망치고 있었다.누군가를 버리고,누군가를 문 너머에 남겨둔 채로.빛이 .. 2025. 12. 10. Y-4 눈앞의 강렬한 빛이 사그라들자, 방은 다시 어둠으로 가라앉았다.그러나 조금 전까지 형태를 드러내던 존재는 이미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숨소리도, 발소리도 없이, 그저 존재하고 있었다.나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지만, 발목이 금속판에 걸려 더 갈 곳이 없었다.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안으로 차가운 공기가 칼날처럼 파고들었다.“…대체 내가 뭘 기억해야 한다는 거지…?”내가 말하자, 그 존재는 미세하게 고개를 기울였다.그 움직임은 너무 부드러워서, 마치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인간의 행동을 흉내 내는 것처럼 어색했다.“너는 이곳의 첫 번째 증인이었다.”울림 같은 그 목소리가 방 안에 가라앉았다.나는 경악에 가까운 표정으로 그 존재를 바라보았다.“증인…? 무.. 2025. 12. 10. 이전 1 ···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