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이 교차하며 흔들리는 그 공간은
현실의 물리 법칙을 전부 거부하고 있었다.
공간이라는 단어조차 부족했다.
‘존재함’이라는 개념만이 이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울리는 그 목소리
“오랫동안 기다렸다, 새로운 조율자.”
그 말은 단순한 음성이 아니었다.
직접 내 의식을 두드리고,
내 심장 깊은 곳을 흔드는 진동이기도 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형체 없는 파동이 물결처럼 움직이며 말랐다.
존재—팀 리더였던 그 역시 내 옆에 서 있었다.
그의 형체도 인간의 모습이 아닌,
희미한 윤곽만 남은 의식으로 변해 있었다.
“조율자…?”
나는 중얼거렸다.
“그게 무슨 뜻이지?”
그러자 파동이 부드럽게 흔들리며 대답했다.
“구체를 작동시킬 수 있는 자.
우리의 의식을 정렬시키고,
혼란을 억제하며,
새로운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 자.”
“설계…?”
나는 목이 탔다.
“뭘 설계한다는 거야?”
파동이 잠시 정적을 품었다.
그리고 반복 없이 정확한 어조로 말했다.
“세계다.”
순간
나도, 그리고 내 옆의 존재도 얼어붙었다.
세계라고?
이 기계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건데?
존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없다.
이 기계는 차원 간 정보 집적 장치였지,
창조의 도구가 아니었다.”
그러자 파동이 대답했다.
“우리가 네가 알던 기술의 범위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말에 존재의 의식이 흔들렸다.
그의 내부에서 분노, 충격, 절망 등의 감정이 얽혀 피어올랐다.
나는 그 감정들의 요동을 느끼며 말했다.
“…그럼,
이 기계는 단순히 우리의 의식을 흡수한 게 아니라…?”
파동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진동했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의식과 결합했다.
인간이라 부르는 삶의 형태는
하나의 층위에 불과하다.”
그 말이 끝났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 기계 내부의 ‘전체’를 보았다.
빛과 어둠이 흐르는 강.
수천, 수만 개의 의식들이
끊임없이 합쳐지고, 분리되고, 변화하고 있었다.
누구는 울부짖었고,
누구는 깨달음을 얻었고,
누구는 공허한 혼돈 속을 떠돌았다.
그리고 그 중앙에
맹렬한 소용돌이가 있었다.
그건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었다.
수많은 존재의 ‘결정짓지 못한 선택’들이 뒤엉킨 핵심.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 채,
과거에 갇힌 선택의 덩어리.
파동이 말했다.
“조율자의 역할은
이 혼돈을 정렬하여
새로운 현실을 구축하는 것이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숨조차 물리적이 아니다.
그저 ‘의지’가 떨리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왜?
왜 나를 조율자로 선택했지?”
그러자 파동이 떨림을 내보냈다.
“너는 선택을 했다.
무너지는 순간에도 선택을 했다.
그 선택은 수많은 의식들 사이에서
특별히 강한 흔적을 남겼다.”
팀 리더였던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날 네가 버튼을 눌렀을 때…
기계는 너를 중심으로 재정렬되었던 건가…”
파동이 고요하게 말했다.
“그렇다.”
나는 믿기지 않았다.
내 하나의 선택이—
세계 전체의 구조를 바꿔버릴 수 있는 ‘특성’이었다니.
파동이 다시 말했다.
“이제 질문하겠다, 조율자여.”
사방의 의식들이 고개를 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천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너의 선택은 무엇인가?”
주변의 공간이 흔들렸다.
의식들의 물결이 거대한 파도로 나를 밀어붙였다.
“현실을 재구축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혼돈을 유지할 것인가.”
나는 침묵했다.
혼돈을 유지한다면
수많은 의식들이 끝없이 떠돌며 괴로움을 겪는다.
재구축한다면
내가 선택한 원리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현실이 탄생한다.
존재가 조용히 내 손등에 자신의 의식을 얹었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번엔 믿겠다.”
나는 오래도록 침묵했다.
고요 속에서
수많은 기억과 감정이 흘러갔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입을 열었다.
“내 선택은…”
거대한 공간이 숨을 죽였다.
의식의 파동들이 흔들리며 나에게 집중했다.
존재조차 몸을 굳힌 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한 단어 한 단어를 뱉었다.
“새로운 구조를 만들겠어.”
“하지만”
내 목소리가 점점 더 단단해졌다.
“그 구조는 내가 만드는 게 아니야.”
“단일한 의지나 특정한 목적이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라…”
나는 손을 들어 소용돌이의 중심을 가리켰다.
“모든 의식이 함께 선택하는 세계를 만들겠어.”
그 말이 끝나자
기계 내부의 모든 의식이
폭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빛의 강이 흔들리고,
어둠의 층이 쪼개지고,
수많은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존재가 숨을 내쉬었다.
“…그게 가능할까?”
나는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첫 번째 조율자의 ‘명령’이라면
가능하겠지.”
그리고 나는 손을 뻗어
소용돌이의 중심에 닿았다.
순간
세계가 뒤집혔다.
빛이 폭발했고,
어둠이 노래했고,
의식들이 서로 손을 맞잡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합쳐졌다.
새로운 세계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존재의,
아주 인간다운 목소리였다.
“잘했다… 조율자.”
그 말과 함께
나는 새로운 현실의 빛 속으로 떨어졌다.
새로운 세계의 첫 번째 숨이,
내 앞에서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