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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LE

Y-5

by 아싸너구리 2025. 12. 10.

눈앞이 회전하듯 흔들렸다.
밀려드는 기억의 파편들이 서로 부딪히며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내 기억이 아니다.
아니, 내 기억일 리 없다.

하지만 빛은 계속해서 내 두개골 깊숙이 스며들었고, 장면들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복도의 붉은 경고등 아래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 간절한 손짓, 문틈 사이로 넘실거리는 연기.

그리고
그 사람의 손을 내가 뿌리치는 장면.
손목을 휙 털어 내며 뒤로 물러났던 내 모습이 보였다.

“아니야… 나 그런 짓 하지 않았어… 난… 그럴 리가…”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떨렸고, 거의 울음에 가까웠다.
그러나 기억 속 나는 명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끔찍하게 의식적이었다.

도망치고 있었다.
누군가를 버리고,
누군가를 문 너머에 남겨둔 채로.

빛이 다시 한번 번쩍이며 또 다른 장면이 눈을 찔렀다.

폐쇄된 연구실.
불규칙하게 깜박이는 모니터.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

그 사이를,
나는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두려움도, 죄책감도 없는 표정으로.

나는 주저앉았다.
몸이 떨려서, 손을 바닥에 짚고 겨우 버티고 있었다.

“그만… 그만 보여줘… 제발…”

존재가 바로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개 같은 얼굴 속에서 어렴풋이 드러난 눈동자는 인간의 것과 너무나 달랐다.
그러나 그 속에는 이상할 정도로… 슬픔에 가까운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네가 도망쳤던 기억이다.”
그 존재가 낮게 속삭였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난… 도망친 게 아니야…”
나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지만,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다.
“그때 나는… 나도 몰랐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존재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너는 알고 있었다.”
“너는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그 말이 끝나자, 기억의 마지막 파편이 머릿속 깊은 곳에서 충돌하듯 선명해졌다.

연구실의 중심에 있던 검은 기계.
수많은 경고음.
그 기계를 향해 손을 뻗던 내 모습.
모든 시스템을 오버라이드하는 명령어.
그리고
기계를 둘러싼 투명한 구체가 터져 나가며 만들어낸 빛.

그 빛이 사람들을…
모두…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머리를 감싸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건… 나 때문이 아니야…
난… 명령받았어… 난…”

그때, 존재가 아주 조용히 말했다.

“…누가 너에게 명령했는지 기억해 봐라.”

그 한마디는
마치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함정문을 여는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에서 다시 불길한 잔향이 울렸다.
누군가의 목소리.
단호하고 차갑고, 이상하리만치 익숙한 목소리.

“실수하지 마.
우리는 네가 필요하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 등골을 타고 소름이 전율처럼 퍼져나갔다.

그 목소리는…
그 얼굴은…

나는 숨을 삼키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존재를 바라보았다.

“…설마… 너…?”

존재의 안개 같은 얼굴이
아주 천천히, 아주 미세하게
웃는 듯한 형태로 일그러졌다.

“그래.
드디어 기억나는군.”

방 안에 퍼진 적막.
그리고 나를 기다리던 진실이
지금 막,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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