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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LE

Y-7

by 아싸너구리 2025. 12. 11.

끝없는 낙하가 이어졌다.
중력은 분명 아래로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지만,
어딘가에서는 위로 떠오르는 것 같은 이상한 감각도 동시에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방향과 속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저
떨어지고 있었다.
기억이라는 심연 속으로.

손을 잡고 있던 존재의 감촉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손을 더 세게 붙잡았다.
미끄러지면, 그 즉시 이 끝없는 어둠 속에 영영 가라앉게 될 것만 같았다.

‘기억을 완성하자.’

그 존재의 마지막 말이 귀에 계속 맴돌았다.
내가 잊고자 했던 것,
숨기고 있던 것,
두려워 피했던 모든 조각이
지금 이 어둠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추락이 갑자기 멈췄다.

충격은 전혀 없었다.
눈을 뜬 듯도, 계속 감고 있는 듯도 애매한 상태에서
나는 평평한 바닥에 서 있었다.

주변에 서린 어둠이 아주 천천히 걷히기 시작했다.
안개가 갈라지듯, 시야가 조금씩 밝혀졌다.

그리고 나는 그 장소를 보았다.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끔찍할 만큼 친숙했다.

“여기… 연구 구역 B-07…”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
내가 모든 일이 시작되기 전 매일같이 출입하던 곳.
기계음과 냉기, 그리고 은은한 약품 냄새까지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존재도 내 옆에 서 있었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는 더 이상 안개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형체가 선명하게 드러나며,
인간과 비슷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얼굴은
내 기억 속 누군가와 똑같았다.

“너…”
나는 숨을 멎은 채로 말을 잇지 못했다.
“팀 리더…?”

그 존재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그저 내 표정을 바라보며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당신은 그날… 사망했잖아.”
나는 그날의 보고서를 떠올렸다.
붕괴 직전, 폭발 지점에서 사라진 팀 리더.
신체는 끝내 회수되지 못했다.

존재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죽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이 형태로 남게 된 것에 가깝지.”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바닥의 냉기가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무슨 소리야…? 어떻게… 당신이…”

“네가 그 기계를 활성화했을 때
우리 모두 그 빛에 잠식되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흐릿했지만, 한 단어 한 단어가 뼈처럼 무거웠다.

“나는 그 빛 속에서 흩어지지 않았다.”
“내 의식은… 기계의 내부에 잔류했다.”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잠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 문득, 별개의 퍼즐 조각들이 하나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들려오던 그 목소리.
머릿속에 울리던 이상한 명령.
그리고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존재’.

“…설마”
내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처럼 흘러나왔다.
“그 기계가… 당신을 흡수한 거야?”

존재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는 분명한 표정으로,
마치 인간이었을 때의 그 표정 그대로.

“그래.”
“그리고 너 역시 그 기계가 선택한 사람이다.”

숨이 턱 막혔다.

“그날 네가 버튼을 눌렀을 때”
그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었다.”

나는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주변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벽과 바닥, 연구 장비들이 금속음과 함께 일렁였고,
기억의 공간이 파도처럼 일그러졌다.

“도망치지 마라.”
그 존재가 말했다.

“네가 왜 이곳에 왔는지,
네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둠이 다시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기억의 공간이 완전히 무너질 듯 흔들렸다.

“아직… 마지막 기억이 남아 있다.”

나는 얼어붙었다.

마지막 기억.
그 말이 귀를 때리고, 심장을 파고들었다.

존재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자신도 모르는
네가 왜 버튼을 눌렀는지에 대한 진짜 이유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눈앞의 공간이 완전히 부서지며
다음 기억의 문이 열렸다.

어둠 속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날, 기계가 폭주하기 직전…
누군가가 분명히 말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나 자신이었다.

“지금밖에 없어.”

나는 얼어붙은 채,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다음 기억으로 끌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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