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OBLE

Y-8

by 아싸너구리 2025. 12. 11.

그 말은 내 귀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지금밖에 없어.”
내 목소리.
확실히… 나였다.

그러나 기억 속의 나는 지금의 나와 전혀 달랐다.
그 목소리에 깃든 결의, 단호함, 그리고… 비밀을 알고 있는 자의 침착함.
그건 절대 ‘몰라서 버튼을 눌렀던’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공간이 완전히 뒤틀리며 주변이 흩어졌다.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나는 그 중심에서 또다시 끌려왔다.
몸이 앞으로 끌리는 느낌
이번엔 추락이 아니라, ‘끌어당김’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연구실의 메인 챔버 안에 서 있었다.

기계가 있었다.
검은 구체, 수많은 전선, 빛을 모아두던 투명한 막.
모든 것이 그날 마지막 순간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저 사람은… 나였다.

기억 속의 나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경보음에도,
주변에서 울부짖는 동료들의 목소리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기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으로.

“저게… 나라고…?”
내 목소리는 떨렸고, 거의 들리지도 않았다.

옆에 팀 리더였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대신 말했다.

“그렇다. 너의 ‘완전한’ 기억이다.”
“이제… 마지막을 보아라.”

기억 속의 내가 손목에 달린 패널을 열었다.
열쇠처럼 생긴 모듈을 꺼내 기계에 꽂았다.
그 순간 기계가 셋, 넷, 다섯… 여러 겹의 음을 울리며 반응했다.

그리고 나는
기억 속의 나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이건… 유일한 방법이야.”

“무슨 방법…?”
나는 본능적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순간,
기억 속의 내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 아무도 없는데
그는 분명히 ‘누군가’를 바라봤다.

나는 자리에 얼어붙었다.

“설마…”
내 심장이 크게 뛰었다.
“그때 난… 누구와 말하고 있었던 거야?”

존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기억 속의 ‘나’가 다시 말했다.

“당신이 틀린 건 아니야.”
“하지만 이건 당신이 감당할 문제가 아니야.”

내 전체가 서늘해졌다.

감당할 문제가 아니라고?
누구한테?
누구에게 말하고 있었던 거지?

기억 속 내가 기계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내가 한다.
나밖에 할 수 없으니까.”

‘나밖에 할 수 없다.’

그 말이 내 심장을 짓눌렀다.

그리고
빛이 폭발하기 전,
기억 속의 내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 들려왔다.

“미안해.
하지만 이건… 네가 바랐던 일이 아니야.”

나는 숨도 잊어버린 채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아 존재를 바라보았다.

“네가… 바랐던 일?”
“그게 무슨 뜻이야…?”

존재의 얼굴이 흔들리며,
안개 같은 형체 속에서 작은 감정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슬픔이었다.
그리고 죄책감.

“그날 그 순간
너는 나를 막으려 했다.”
존재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인간다웠다.

“그리고…
나는 너를 믿지 않았다.”

“…뭐라고…?”

내가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기억 속 장면이 폭발하듯 이어졌다.

기계의 내부,
두 개의 의식이 충돌하는 장면.
한쪽은 나.
다른 한쪽은… 존재, 팀 리더였던 그.

우리는 서로 다른 명령을 기계에 주입하고 있었다.
내가 기계를 ‘멈추려’ 할 때,
그는 기계를 ‘가동시키려고’ 했다.

명령의 충돌.
그 갈등이 일으킨 폭주.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나는 그대로 무너져 주저앉았다.

“그럼… 그날 일어난 모든 건
내 잘못이 아니라…”

존재가 눈을 감았다.

“그래.”
그는 낮게 말했다.
“너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나는 울컥한 숨을 삼켰다.

그러자 존재의 목소리가 떨리며 이어졌다.

“하지만 너는…
모두를 살리기 위해 버튼을 눌렀다.”
“나를 막기 위해서.”

숨이 멈췄다.

“너는…
너 자신을 희생하려 했던 거다.”

눈앞이 흐려졌다.
하지만 그 순간
기억의 장면이 마지막으로 번쩍이며 빛났다.

기계 속에서 사라지기 직전,
기억 속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다음에 깨어난 나에게
진실을 전해줘.”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존재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껏 나를 이끌어온 것이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네가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였어?”

존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둠이 다시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번엔 무너지는 어둠이 아니라
끝을 알려주는, 마지막 장면의 그림자였다.

“이제”
존재가 말했다.

“네가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할 시간이다.”

그 말이 끝나자,
기계가 다시 내 앞에서 불을 켜기 시작했다.
그날과 똑같은 경고음이 울렸다.

과거와 현재가 정확히 겹쳐진 순간이었다.

나는 두 번째 선택의 순간 앞에 서 있었다.

'NOB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Y-10  (0) 2025.12.11
Y-9  (0) 2025.12.11
Y-7  (0) 2025.12.11
Y-6  (0) 2025.12.10
Y-5  (0) 2025.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