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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LE

Y-4

by 아싸너구리 2025. 12. 10.

눈앞의 강렬한 빛이 사그라들자, 방은 다시 어둠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형태를 드러내던 존재는 이미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
숨소리도, 발소리도 없이, 그저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지만, 발목이 금속판에 걸려 더 갈 곳이 없었다.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안으로 차가운 공기가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대체 내가 뭘 기억해야 한다는 거지…?”

내가 말하자, 그 존재는 미세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 움직임은 너무 부드러워서, 마치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인간의 행동을 흉내 내는 것처럼 어색했다.

“너는 이곳의 첫 번째 증인이었다.”
울림 같은 그 목소리가 방 안에 가라앉았다.
나는 경악에 가까운 표정으로 그 존재를 바라보았다.

“증인…? 무슨 증인?”

“너는 보았다. 네가 보기로 선택했다.”
그 말은 마치 내 기억 깊은 곳을 직접 건드리는 듯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순간, 머릿속이 다시 아프게 쿵— 하고 울렸다.
복통처럼 아파오는 기억의 파편들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어두운 복도.
닫힌 문.
안에서 들리는 울음소리.
그리고…
눈을 마주친 누군가의 얼굴.

나는 정신이 아득해져 벽을 짚었다.

“아니야… 난 그런 거…”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 존재가 한 걸음 다가왔다.
가까이에서 보니,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지만 윤곽이 흐렸다.
마치 안개가 인간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는 듯한 실루엣.

“네가 도망쳤을 뿐이다.”

그 말이 내 가슴 깊은 곳에 박혔다.
그 순간, 방 안의 금속판에서 또다시 빛이 깜박였다.

찰칵—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

천장이 천천히 열렸다.
무언가 거대한 구조물이 위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치형의 프레임, 수많은 전선, 그리고 가운데에는 내가 본 적 없는 형태의 구체가 달려 있었다.

“…뭐야, 이건…”

내가 뒤로 물러서는 사이, 존재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 길고 가느다란 손이 구체를 향해 닿자, 방 안의 공기가 멈춘 듯 정지했다.

“기억을 다시 여는 장치다.”
그 존재가 말했다.
“네가 본 것을 다시 보여줄 것이다. 숨지 말고 받아들여라.”

“싫어.”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말했다.
“난…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

존재가 멈춰 서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안개 같은 얼굴 속에서, 어딘가 사람이었던 흔적이 흔들렸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그 말과 동시에—
구체가 강렬한 빛을 토해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바닥의 금속판에서 문양들이 순식간에 빛을 따라 퍼져 나갔고,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빛 자체가 나를 붙잡은 듯했다.

그리고 머릿속에 어떤 영상이 그대로 던져지듯 폭발적으로 흘러들었다.

낯선 복도.
붉은 경고등.
문을 두드리며 울부짖는 사람들.
그리고…
내 손에 묻어 있던 붉은 흔적.

나는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목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 존재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 깊은 곳에서 울렸다.

“이제, 네가 왜 여기 있는지—
기억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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